럭셔리 브랜드의 차이는 런웨이 위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는 쇼가 끝난 뒤, 고객이 어떻게 그 장소를 떠나는지에서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같은 해 서울에서 열린 두 개의 첫 패션쇼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옷보다 귀가의 장면을 먼저 기억한다.
하나는 샤넬이었다. 장소는 DDP. 칼 라거펠트가 직접 서울을 택했고, 샤넬이 한국에서 여는 첫 번째 컬렉션이었다.
다른 하나는 에르메스였다. 에르메스 역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는 패션쇼였다.
두 쇼의 차이는 런웨이 위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입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달라져 있었다.
DDP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내 담당 SA가 나와 있었다. 평소 다니던 부티크의 점장도 함께 있었다. 점장이 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쇼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이름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안내했다.
그 순간부터 고객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이미 샤넬이 설계한 장면 안으로 들어간다.
쇼가 끝난 뒤에는 샴페인과 케이터링이 준비된 애프터파티가 이어졌다. 애초에 샤넬은 샴페인을 편히 즐길 수 있도록 차를 가져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안내했다. 그래서 나는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 말은 단순한 안내가 아니었다.
고객이 쇼를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떠나고, 어떤 감각으로 집에 도착할 것인가까지 이미 계산된 동선의 일부였다.
돌아갈 방법을 생각하려는 순간, 직원이 다가왔다.
안내된 곳에는 별도로 준비된 승강장이 있었다. 모범택시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차 안에는 샤넬 코튼 냅킨에 감싸인 생수와 작은 향수가 놓여 있었다.
요금은 없었다. 설명도 길지 않았다.
에르메스 쇼는 겨울이었다.
나는 에르메스 메종에 주차를 하고, 다른 고객들과 함께 소형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고려대학교 체육관이었다. 이동 중 버스가 멈췄다. 쇼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겨울 도로 위 어딘가에서 내려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함께 간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 기다림은 더 길게 느껴졌다.
쇼장에 도착했을 때, 내 담당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나를 알아보던 매니저들이 있었지만, 인사는 눈인사 정도였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거나,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체육관은 추웠다. SS 컬렉션이었지만, 공간의 온도는 계절을 따라가지 못했다.
런웨이 위의 의상은 분명 에르메스다웠다. 익숙한 패턴, 익숙한 실루엣, 익숙한 절제. 그러나 그날의 경험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느낌은 약했다.
발레파킹을 맡긴 고객들은 차를 찾는 데 오래 걸렸다고 했다.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메종으로 돌아와, 내 차를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에르메스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에르메스는 샤넬과 같은 방식으로 패션쇼를 중심에 두는 브랜드가 아니다. 에르메스의 언어는 가방, 실크, 가죽, 도자기, 가구, 안장에 더 깊이 새겨져 있다. 런웨이는 에르메스의 유일한 무대가 아니다.
반대로 샤넬은 쇼를 브랜드의 핵심 언어로 다뤄온 하우스다. 1년에 여러 번, 세계 여러 도시에서 쇼를 열고, 초대부터 퇴장 이후까지 이어지는 환대의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단련해왔다.
그러나 그날 내가 기억한 차이는 단순히 준비의 차이가 아니었다.
샤넬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쇼의 일부로 설계했다. 에르메스는 런웨이가 끝나는 순간, 쇼를 끝냈다.
럭셔리 경험은 커튼이 내려가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고객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에도 끝나지 않는다. 차에 오르고, 집에 도착하고, 현관문을 닫은 뒤에도 그 경험이 어떤 감각으로 남는지가 브랜드의 일부가 된다.
고객은 모든 장면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떤 장면은 오래 남는다.
샤넬 냅킨에 감싸인 생수 한 병. 차 안에 조용히 놓여 있던 향수. 겨울 체육관의 차가운 공기. 돌아오는 길의 미묘한 온도.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은 쇼의 순서가 아니다.
브랜드가 경험을 어디까지 책임졌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