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스물네 살의 나는 샤넬코리아 면접에서 탈락했다.

서소문 오피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넬을 입은 여자 상무님. 한쪽 구석엔 막 출장에서 돌아온 캐리어.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바쁘게 나를 맞이하셨다.

"마케팅을 하고 싶습니다."

상무님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셨다.

"샤넬코리아의 마케팅은 네가 생각하는 마케팅이 아니야. 여기 마케팅은 엑셀이야."

1999년 샤넬코리아에는 독자적인 광고 캠페인이 없었다. 본사 컨펌 없이는 아무것도 집행되지 않았다. 로컬 마케터의 역할은 단순했다. 한국 시장의 수요를 예측해 본사에 오더를 넣고, 배정된 물량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 전략가가 아니라 정교한 물류 시스템의 운영자였다.

"엑셀은 좀 하니?"

기본은 된다고 했다. 상무님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다시 보셨다.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다른 회사를 찾아봐."

씁쓸하게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 · ·

2010년대, 나는 샤넬의 VVIP 고객이 됐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단, 다른 의미에서.

부티크의 구조는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SA가 원하는 스타일, 사이즈, 컬러를 받아 적는다. 시즌 전에 본사에 오더를 올린다. 본사에서 배정이 오면 고객에게 전달한다. 퍼스널 쇼퍼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교한 물류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는 한 가지를 더 봤다.

샤넬 VIP 세일은 일 년에 두어 번,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 가보면 팔리지 않은 제품들이 꽤 있다. 수요 예측이 항상 맞지는 않았다는 흔적이다.

여기서 역설이 있다.

샤넬은 수요를 따라가지 않는다. 공급을 통제함으로써 욕망을 유지한다.

그런데 그 통제가 완벽하지 않을 때 재고가 생긴다. 그 재고를 처리하는 방식조차 철저히 비공개다. 대중에게 세일이 노출되는 순간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이게 럭셔리 브랜드 아키텍처의 본질이다.

로컬 조직은 전략을 만들지 않는다. 전략은 파리에 있다. 로컬은 그 전략이 이 시장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이다.

완벽한 희소성은 없다. 하지만 희소성의 인식은 철저히 관리된다.

1999년 상무님의 말은 거절이 아니었다. 럭셔리 브랜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솔직한 설명이었다.

나는 그걸 이해하는 데 20년이 걸렸다.